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제핀 드 보아르네 (문단 편집) == 일화 == * [[샅내]]가 [[흰 곰팡이 핀 연성치즈|카망베르 치즈]] 같다거나, 암내가 심했다는 소문이 있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직후 어느날 연회를 벌였는데 아무리 봐도 황제가 보이지 않자, 사람들이 찾다보니 그는 [[소파(의자)|소파]]에서 편안히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노는 시종들이 황제를 그냥 깨우면 무례하니 나폴레옹이 좋아하는 치즈를 가져와서 코에다가 대고 맡게 하면 일어나리라고 의견 합의를 보았는데, 막상 치즈를 들이대니까 나폴레옹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잠꼬대|조제핀,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못하겠어]]."'''였다. 영어로는 "Not tonight, Joséphine"이라고 하는데, 이 구절은 남성이 여성의 성관계 요청을 거절하는 관용구로 쓰인다. 이건 부인병인 [[냉(점액)|냉]]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여성의 체취에 성욕을 느끼던 나폴레옹의 독특한 성적 취향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나폴레옹은 샅내나 암내에 페티쉬가 있었는데, 오죽하면 전쟁 나갔다 돌아오며 조제핀에게 쓴 편지 중에 '''씻지 말고 기다리시오'''(...)가 있었다고. 나름 재밌는 일화긴 하지만 부위가 부위인지라 대중적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뭐하기 때문에 어린아이같은 대상에게는 그 냄새가 아니라 암내라고 자주 바꿔서 전파된다. * 바라스의 또다른 정부였던 테레사 탈리앵과는 절친이었는데 소문에는 [[쓰리썸|3P]] 관계까지 있었다고 한다. 바라스 외에도 당대의 권력자나 재력자들과 염문이 꽤 많았고 실제로 그렇게 남자들에게서 뜯어낸 돈으로 생활을 유지했다. 하지만 사치벽이 있었기 때문에 빚을 많이 져서 나폴레옹이 집권한 뒤에도 그녀의 빚 문제로 골치를 썩였다고 한다. 게다가 황후가 된 이후로는 사치가 더 심해져 매년 수백 벌의 드레스와 수백 켤레의 구두와 장갑을 각각 구입했는데 나중에는 나폴레옹의 눈치가 보여 자식들에게 비밀리에 돈을 빌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사치벽 때문에 오히려 당대의 유행을 선도했고, 밑바닥에서 자수성가한 벼락출세자들이 득실거리던 나폴레옹 궁정의 품위를 유지하는데 기여했다고. * 사실 엄청나게 남자를 밝히고 사치가 심해서 나폴레옹의 골치를 썩이기는 했지만, 그런 한편으로는 선량하고 인정이 많아서 인망이 높았다. 어려운 처지의 친구나 이웃도 제법 도와주었고 고아가 된 남편의 당질녀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스테파니]]를 데려다 키우기도 했다. 남편이었던 보아르네 장군은 인성이 그리 좋지 않았던지라 조제핀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고,[* 독일 왕족 여성인 아말리아 제피린을 애인으로 두고 있었으며, 아이들에게도 무심했기 때문에 조제핀의 아이들이 친아버지 보아르네보다는 양아버지 나폴레옹과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때문에 장군이 혁명으로 죽기 얼마전에 이혼한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조카도 아니고 이혼한 남편의 5촌 조카를 데려다 키운 거다.[* 조제핀은 귀족에다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바라스의 정부였으니 빽이야 있었지만 워낙 낭비벽이 심하다보니 재정적으로는 완전히 파산 상태였다. 살고있던 집도 남의 것인데다 생활도 완전히 빚으로 꾸려가고 있는 상태였다. 아직 미모가 남아 있고 여기저기 인맥이 남아있어서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바라스에게 버림받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게 분명한 상태였기 때문에 바라스도 그녀가 부담이 되나 그냥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 나타난 나폴레옹에게 바톤 터치하는 식으로 넘겨버렸다.] 스테파니는 덕분에 조제핀이 나폴레옹과 결혼하자 나폴레옹의 피부양자가 되어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와 함께 단숨에 황족 신분이 되고, 외국의 왕자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나중에 외손녀가 벨기에 왕가로 시집을 가면서 벨기에 국왕의 직계 조상이 된다. 스테파니의 경우 완전히 인생 자체가 로또 맞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때 조제핀이 거둬주지 않았다면 스테파니는 운이 아주 좋아야 교회가 운영하는 고아원 같은 곳에 들어가 자란 뒤 약간의 재산 있는 남자에게 시집 가는 거였고, 운 나쁘면 거리를 떠돌다 굶어 죽거나 창녀가 될 가능성도 다분했다. 실제로 당시 프랑스에서는 스테파니 정도의 신분으로 고아가 된 경우 그렇게 풀리는 경우가 득실득실했다. 그런 처지에서 맘씨 좋은 인척 아줌마가 자기를 데려가더니 어느날 갑자기 신분이 황족으로 급상승 하고 옛날 같으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진짜 왕자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 [[오스만 제국]]의 태후 [[나크시딜 술탄]]이 조제핀의 사촌인 에메 뒤비크 드 리베리(Aimée Dubuc de Rivery)라는 설이 있다. 프랑스 출신으로 알려진 나크시딜 술탄은 수녀원에 가기 위해 배를 탔다가 [[바르바리 해적]]에게 납치되어 [[이스탄불|코스탄티니예]]로 끌려갔고 [[압뒬하미트 1세]]의 눈에 띄어 황후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는 친프랑스식 개혁을 시행하였기에 퍼진 소문으로 한때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소개되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B%82%98%ED%81%AC%EC%8B%9C%EB%94%9C_%EC%88%A0%ED%83%84|출처]] *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 이후 1794년 폐지된 흑인 [[노예제]]를 1802년에 부활시킨 것은 조제핀의 부탁 때문이었다. [[마르티니크]] 섬에 있는 조제핀의 친정이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했고 흑인 노예 없이는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조제핀 사후 마르티니크의 생가에는 조제핀의 흉상이 만들어졌는데 머리가 한 번 잘려나가고 복원한 이후에도 누군가 계속 잘라간다고(.....) 단순한 에피소드 같지만 실제로 아직까지는 극단으로 치닫지 않았던 [[아이티 혁명]]을 강경 진압하고 재침공하면서 혁명 초기만 하더라도 적지 않은 조류였던 식민지의 유색인종이지만 프랑스 국가와 프랑스 혁명의 이상엔 공감하던 흑인 크레올, 해방 노예 계몽주의자들의 전통을 박살낸 게 나폴레옹이었다. 인종 정책에 있어서 제정은 확실히 공화정보다 더 후퇴한 면을 보였고, 아이티에서 벌어진 대참극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자국 프랑스인들에게는 위대한 국가와 자유주의적 제국을 선물했지만, 프랑스 혁명의 보편적 이상주의는 후퇴시킨 나폴레옹 치세의 성격에 있어 상당히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 한 관광객이 파리 벼룩시장에서 오래된 장신구 하나를 관광기념품으로 구입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공항검문대를 통과하다가 파리 공항경찰에게 유물 밀반출혐의로 체포 당할 뻔 했는데 헐값으로 산 오래된 장신구가 [[나폴레옹]]이 조제핀에게 선물한 장신구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 [[나폴레옹 3세]]의 황후인 [[외제니 드 몽티조]]의 롤모델이기도 했다. 사치도 적당히 하면서 명품 상인들의 인망도 얻고, 한편으로는 과도한 사치비용을 절약해서[* 황실에 기본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아닌 특별세금으로 사치를 하는 것은 자제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기부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